멋진 사람

난 종종 ‘멋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내 나름대로는 진지한 표현인데 가볍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농담에 섞어서 쓰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농담과 진담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다른 주제의 문제이다.

한번 그 의미를 고민해보았다. 나에게 어떤 사람들이 ‘멋지게’ 보여지는가..

그 결과를 짧게 정리하자면 ‘무언가를 통해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무언가’는 다양하다. 대화, 글, 음악, 몸짓, 춤, 만들어내는 모든 것, 남기는 모든 흔적들.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진다.

그리고 그 ‘표현’이 기분을 상하게 할만한 것이라면 물론 ‘멋진’ 것에서 제외된다.

이정도면 잘 정의된 것 같지만 한가지만 더 짚어보자면, 무언가를 ‘다루는’ 것과 ‘통해서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자면, 단순히 어떤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노래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표현해내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후자쪽이 좋다.

물론 다른 사람의 멋진 모습을 바라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지..

싫은 사람

와우에서 예전에 레이드를 뛰던 팀에 있는 한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그 사람은 내가 그 레이드팀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물론 그러고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득, 여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사람 중 몇몇이 싫어서 선뜻 돌아갈 수는 없을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기도 싫어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냥 즐겁게 레이드를 뛴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지금 활동하는 레이드팀에 처음 들어왔을때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마음이 바빴던것 같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한두명씩 맘에 안드는 사람들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싫은 사람’은 어디에 가더라도 생기는게 아닐까.

얼마전 카페에서는 한사람이 많은 회원들의 미움을 샀다. 그리고 결국 도망치듯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람이 처음부터 미움을 산 것은 아니였다. 어떤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 사람에게로 시선이 집중되면서 그 사람의 안좋은 모습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였다.

그 상황에서 나는 중재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의 안좋은점은 충분히 알게 되었지만 그것때문에 그 사람을 쫓아내고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회원들은 그 사람을 빨리 쫓아내버리길 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 모습이 레이드팀에서의 공대장의 모습과 같은게 아니였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내 역할에 따라 다른 잣대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반대편의 입장이 되어보고 나서야 그것을 겨우 깨달았다. 게다가, 깨달은 이후라도 같은 잣대를 쓰는 것은 어려워보인다.

나의 또다른 한계를 발견했으니 그만큼 나의 그릇을 더 넓혀보자.

슬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보게 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자신과 싸우는 것은 정말 화나는 일이다.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자아와의 싸움에서 어느쪽이 이기던지, 승리의 기쁨은 쉽게 잊혀지고 패배의 아픔은 깊게 남는다.

넘어지면 다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균형을 잃어버린채 넘어지는 몸을 바로잡기 위한 찰나의 몸부림..

어느새 기억도 잊혀지고 상처의 느낌만 슬픔으로 남는다.

어떻게 보더라도 결국 나 스스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해답도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꺼내어놓지도 못한다.

꺼내려고 하더라도 어느새 기억은 사라져있고,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또다른 아픔을 준다.

그리고 깨닫는건 나의 외로움.

슬픔마져 사라지기만을 홀로 기다릴 뿐이다.

아쉬움

올해 3월달부터 썼던 노트가 드디어 끝에 가까워졌다.. 다음 노트를 준비해놔야겠다…

가방의 지퍼 아랫부분이 뜯어졌고..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지금 벌어진거 두배정도면 그 사이로 노트는 넣을 수 있을것도 같다..

아쉽다.. 노트도 마음에 들었는데.. 가방도 마음에 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