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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와의 모험

사건의 발단은 재현이형으로부터 시작된다.

모처럼 여유로운 3일간의 연휴.
금요일 오후 미용실에 있던 나는 재현이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유기견(버려진 개) 한마리를 잠시 맡아달라는 것.
나는 당장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고, 재현이형은 그냥 베란다에 놔두고 나갔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재현이형이 개를 데리고 왔다.
사연인즉슨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이 개가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
누가 키우다 버린 개 같은데 목줄도 없고 털도 이상하게 깎아놨다..
일단 형이 지방에 내려가봐야 하기때문에 내가 주말동안 맡아주기로 했다.
그때까지 키워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다시 거리로 보낼 수밖에 없다.
이번주엔 하계수련대회가 있어서 형이나 나나 3일 이상 집을 비울테니..

개의 종이 말티즈라고 해서 어떤 종인지 검색을 해봤다.
집 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으로 꽤 영특하다고 한다. 단,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고.. ㅡㅡ
어쨋든.. 나 역시 베란다에 거처를 마련해줬다.
그리고 형과 함께 홈에버에 가서 바닥에 깔아줄 매트와 밥그릇, 목줄, 사료를 사왔다.
간단하게 개 살림 장만 완료.
사료를 주니 가볍게 먹어치운다.
재현이형집에서 한번도 똥을 안쌌다고 하기에 걱정은 되지만 일단 계속 먹였다..
좀 먹다가 만다. 식사량은 알아서 잘 조절하는듯.. 역시 영특하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ㅡㅡ;;
식사량 조절 안되는건 닭정도인가? ㅡㅡa

오후엔 교회에 가서 밤에 들어왔다.
들어오는 길에 문득 큰형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해봤다.
형 작업실에 개를 보내는게 괜찮을 것 같아서이다.
근처에서 키워줄 사람이 쉽게 나타날 것 같진 않고..
형 작업실엔 이미 한마리 개가 있기 때문에 덜 심심할 것 같고..
애완용이지만.. 자연 속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서 전화해보니 형도 괜찮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개를 데려가는 것..
내일 버스&지하철로 어떻게든 데려가기로 했다.
데려가는게 힘든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된다는게 좀 그랬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집에 와서 베란다를 보니..
역시 똥을 쌌다..
그래도 개념있게 베란다 한쪽에 싸놨다. 배수구가 있는 쪽..
직접 휴지로 치우고.. 물로 닦았다.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다.
신문지 깔아놓는것보다 이게 차라리 나은듯.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베란다 문을 살짝 열어놓고 난 잤다.
몇번 주의를 주니까 베란다에서 방으로 넘어오진 않는다.
베란다에서 몸을 떠는게 좀 안쓰럽긴 했지만.. 거리에서 떠는것보단 나을테니..
그래서 아무 집이나 쳐들어왔겠지… 잘 고르긴 했지만.. ㅡㅡ;;

새벽 2시쯤 됐나..
이 녀석이 애처롭게 울고 있다.
이 집에 살면서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본건 처음이였던것같다.. ㅡㅡ
나가보니 똥을 싸놨다. 참 깔끔한 녀석이다.. 자기 똥 치워달라고 낑낑대고 있다니..
치워주고 다시 잤다..
한참 자는데.. 또 좀 시끄러워서 보니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 밖으로 짖고 있다.
나가서 베란다 창문도 닫았다.
거실로 통하는 문도 닫았다.

겨우겨우 자고 일어났는데..
사실 정말 힘들었다.
일어나기 힘들었다기보다도..
5시 반에 알람 울리는걸 듣다가 다시 잤는데..
일어나보니 이미 예배가 끝난 시간인 것이다..
좌절하고 이러쿵저러쿵 사건들이 흘러가다보니 점점 현실감이 사라진다..
꿈이였다.
일어나보니 아직 늦지 않은 시간.
일어나 음악을 틀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고 집을 나서면서 보니 베란다 문 바깥에 녀석이 앉아있는 실루엣이 보인다.
괜히 한번 봐주고 가면 더 안좋을 것 같아서 바로 나갔다.

교회에서 성가연습/예배/성가연습을 하고 중간에 밥을 먹는 시간에 그냥 나왔다.
그래도 김밥을 먹는거라서 한줄 들고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먹었다.
집에 와서 개를 데리고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그룹입문교육 때 받았던 어깨로 매는 가방에 개를 넣으면 크기가 적당할 것 같았다.
개를 넣으려고 하니 이녀석이 고개를 번쩍 들고 있다..
난 아예 다 집어넣으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자꾸 누르니까 뛰쳐나가버린다..
한숨을 쉬다가 큰형한테 전화를 했다.
큰형 말로는 그냥 가방에 대충 넣어서 데리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머리 내민 상태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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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그렇게 개 데리고 다니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막 싫은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임무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초등학교에 다닐때 근처 시장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주워온게 생각난다.
길가에서 돌아다니길래 주워서 품에 넣고 집으로 왔다.
아예 셔츠 안으로 넣었었기 때문에 가슴을 많이 할퀴었는데,
생각해보니 어깨쪽에 있는 흉터가 그 때 생긴 것 같다..
이번엔 팔에 긁힌 상처가 생겼다.. 흉터로 남을것같진 않다.

어쨋든.. 개 한마리를 데리고 수원에서 동두천 까지 가는 4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얘기하는건 너무 힘들것 같고..
대충 열거해보자면..
  – 버스에 토함 : 기사님한테 미안하지만 내리기 직전이라서 제대로 못치웠다. ㅠㅠ
이렇게 공공질서를 어지럽힌건 처음인듯.. ㅠㅠ
여튼.. 애완견에게 1시간동안 버스 타는건 많이 힘들었나보다..
  – 가만히 있지 않는다 : 버스에서든 지하철에서든.. 10분정도는 버티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인듯.. 더워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발버둥을 친다.
신기하게도 나중에 큰형 차에 탔을 때에는 얌전했다..
예전에 주로 승용차를 타고 다녔던게 아닐까.. ㅡㅡ;;
  – 지하철에서 똥 : 한번 쌌다.
다행히 치킨타올을 많이 챙겨간 덕에 바로 치워서 나왔다.
의정부 북쪽이라 사람도 적어서 망정이지.. 완전 무개념 될뻔했다..
더욱 다행인건.. 이녀석이 똥이 마려우면 낑낑대며 나가자고 한다.
그리고 똥을 싸다가도 잡아끌면 끊고 따라온다.. ㅡㅡ;;;
그리고 인적드문 곳으로 데려가면 알아서 적당히 싼다…
이걸 보면서 정말 영특하다고 생각했다.. ㅡㅡ;;;;
아무데나 막 싸는 녀석이였다면 지하철 타는건 고사하고 내 옷을 다 망쳤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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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힘든 고난의 길.. 막판엔 비까지 내렸다.. 길이 끝나고 형 작업실에 도착했다.
형네 가족이 다 와서 선화, 선우랑 개 두마리 데리고 한탄강 강가로 산책 가기도 하고..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작업실 앞 화단에서 뽑은 상추에 싸먹고 남은건 개 두마리한테 줬다.
형 집에 먼저 있던 개(메리)는 암컷, 내가 데려온 개(심바)는 수컷이다.
메리는 엄청나게 활달하고, 심바는 조용해서..
처음엔 심바가 아주 잡아먹힐줄 알았지만.. 의외로 경계만 할뿐 싸우진 않았다.
나중엔 뭔가 짝짓기의 전초단계로 보이는 행동들도 취한다..
빠른 녀석들…. ㅡㅡ;;

결국 잘 데려다줬다.
한가지 남은 문제라면.. 이 녀석이 사람이 없는걸 너무 싫어해서 시야에 사람이 없으니 엄청 짖어댄다..
집에서 베란다에 놔두고 나갈 땐 안그랬는데.. 집안과 밖의 차이인가…
하도 짖어대길래 메리 옆에다 묶어놔봤다.
아까 메리 집에 놔뒀더니 메리가 엄청 사납게 굴어서.. 메리한테 깨갱거릴줄 알았는데..
심바는 계속 짖어대고 메리는 옆에서 구경만 한다.. 메리도 좀 당황스러웠는듯.. ㅡㅡ;;

좀 지나니 사그러드는것 같기도 하고..
걱정은 되지만.. 메리와 따로 묶어두고 작업실을 나왔다.
형도 3일정도 작업실 안간다는데.. 옆집에서 엄청 시끄럽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도 옆집 사시는 아저씨도 개를 몇마리 키우시는데..
이 녀석이 귀엽다고 좋아하시는게.. 가끔 와서 봐주실것 같다.

이렇게 하루동안의 모험은 마무리됐다.
전날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반 이상은 서서 버스/지하철로 동두천까지 갔다오니..
수원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완전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내리는 역들은 지나치지 않았다.. ㅡㅡv
집에 돌아오니 11시.. 12시가 넘어서야 잤다…
그래서 유난히 피곤했던 오늘.. 회의중에 꽤 졸았다.. ㄱ-

아쉬운건.. 개때문에 감당이 안되서 카메라를 안들고 갔다는 것..
카메라 챙겨갔으면 괜찮은 사진들 많이 찍었을텐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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